[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2024년 봄 부흥회, 토렌스 조은교회 김우준 목사, 욥기 38장 1절에서 7절

목차

1. 하나님의 침묵
2. 자녀와 부모의 관점으로 본 하나님의 침묵
3. 말씀을 마치며

 

어제에 이어 오늘은 토렌스 조은교회의 김우준 목사님이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시는 2024년 봄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인사로 시작했습니다.

  1. 저는 은혜 많이 받을 겁니다.
  2. 당신도 만만치 않네요.

하나님의 침묵

세상에서는 여러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건강 문제, 가족 문제 등등.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입니다. 기도에 응답하는 분이신 하나님께서도 때때로 침묵을 지키십니다. 내가 절실하게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의 대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왜 침묵하시는 걸까?'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 걸까?'

오늘 우리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욥기를 통해 찾아보겠습니다.


부흥회 첫째날

부흥회 셋째날


욥기 38장
1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4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 
5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6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7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부자인 욥이 하루아침에 전재산을 잃었습니다. 이런 일이 여러분의 삶에 일어났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욥은 또한, 사랑하는 10명의 자녀가 목숨을 잃었고, 자신의 건강도 악화되었습니다. 심지어 믿었던 아내도 독설을 퍼부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망가졌습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훈련이나 징계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의 삶에서 고통을 허락하시는 걸까요?


욥기 38장은 동문서답 형식입니다. 여기서는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오히려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두 가지 패턴으로 나타납니다:

  1. 너는 이것을 할 수 있느냐?
  2. 너는 이것을 알 수 있느냐?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라는 초청입니다. 하나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따라오라고 합니다.



자녀와 부모의 관점으로 본 하나님의 침묵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가 많이 아플 때, 부모는 옆에 있을 수 없습니다. 대신 의사와 간호사가 아이를 치료하며 그곳에 있습니다. 이 상황을 자녀와 부모의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하셨습니다. 자녀의 시각에서 보면, 부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부모는 침묵만을 지킵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시선에서 보면,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옆에 있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아파하는 아이를 위해 의사에게 치료를 중단하도록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이 침묵이 아이를 구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어려서 부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침묵을 지키는데, 그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지, 그리고 예수님께 왜 고난을 허락하셨는지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의 능력과 사랑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며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우리의 삶은 때때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하나님의 허락하신 것이라면, 그 고통에도 하나님의 뜻과 이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다고 하셨습니다.